오피니언 [한겨례] 2011년 무상급식 2021년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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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장 21-03-17 15:11 조회 1,041회 댓글 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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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같은 데 재원을 다 써버리면 결국 남는 게 별로 없게 된다. 사람들이 복지를 누리면서 기대치가 커지고 있지만, 나라 형편이 되는 한도 내에서 즐겨야 한다.”(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2010년 12월15일 트위터 사용자와의 간담회)
“포크배럴(돼지고기를 담는 통. 당시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의원들을 돼지고기를 먹으러 달려드는 노예들에 빗댄 말)에 맞서 재정건전성을 복원해야 한다.… 균형감을 잃은 채 과도한 지출을 부추기는 정책은 표만 의식한 무책임한 논의라는 비난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본다.”(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 2011년 7월6일 외신기자 간담회)
불과 10년 전 재정당국 수장들이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들이다. 복지를 소모적이고 시혜적인 제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잘 드러난다. 당시만 해도 이런 ‘대담한’ 발언이 용인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10~2011년은 한국 사회에서 복지를 둘러싼 힘의 균형추가 막 반대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즈음이기도 하다. 그 한가운데 ‘무상급식 논쟁’이 있었다.
2010년 시작된 무상급식 논쟁은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거치며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단순히 급식 문제로 시작했던 이슈는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하는 복지정책 방향 논쟁으로 확대됐다. 이어진 2012년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은 모두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복지국가 성격을 둘러싸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적인 차원에서 관심과 논란이 제기되고… 복지 노선을 둘러싼 정당 간의 치열한 정책 경쟁이 벌어졌으며… 실제 복지정책의 확대로 연결된”(이태수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건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한국의 복지는 더디나마 여러 성취를 이뤄왔다.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보육이 시행됐고, 기초연금도 자리를 잡았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도 추진됐다. 아동수당이 도입됐고, 코로나19를 계기로 전국민 고용보험도 첫발을 떼고 있다.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이제 복지는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하고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간주된다. 현 정부는 최초로 성장과 분배를 같은 선상에서 강조하는 정부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 확대의 큰 걸림돌이었던 재정관료들의 재정건전성 지상주의와 복지에 대한 거부감도 예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10년간의 발전과 변화에도 우리 복지가 가야 할 길은 멀다. 얼추 복지국가의 제도적 틀은 갖췄지만, 질적인 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넓고,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빈약하다. 보육·요양 등의 돌봄 복지체계는 민간에 맡겨져 있고, 주거·교육 같은 사회서비스도 충분하지 않다. 국민들은 삶의 고비마다 국가의 제도적 보호에 안심하기보다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더 크게 느낀다. ‘복지 논쟁’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최근 무상급식 못지않은 폭발성을 보이는 복지 의제가 공론장에 등장했다. 바로 ‘기본소득’ 논쟁이다. 학계와 시민단체 내부에서 논의되던 주제가 지난해 ‘재난기본소득’이라는 형태로 국민들에게도 소개됐고, 이제는 정치권의 주요한 정책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모든 개인에게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일정액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은 여전히 논쟁적인 개념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돈을 줘야 한다는 철학에서부터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진보진영 내에서도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복지를 다시 한번 국민적 관심사로 밀어올린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주요한 논쟁은 기본소득론과 기존 복지체계를 확대하고 보완하자는 전통적인 복지국가 강화론 사이에 이뤄지고 있다. 인생의 특정 시점에 조건 없이 목돈을 주자는 ‘기본자산제’, 국가가 일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일자리보장제’, 돌봄노동처럼 이윤과 관계없어도 사회에 필요한 활동을 하는 이에게 수당을 지급하자는 ‘참여소득제’ 등 다양한 대안들도 논쟁에 가세하고 있다.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 이번 논쟁이 한국의 복지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끌어내느냐 여부에 우리 사회 향후 10년의 모습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