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순수함은 괜한 걱정을 만든다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칼럼

이민훈의 소소한행복 온전한 순수함은 괜한 걱정을 만든다

페이지 정보

연구소장 19-01-03 18:55 조회 2,034회 댓글 0건

본문

[SL사회복지연구소 이민훈 칼럼리스트] 

 

2017년 봄에 있었던 일이다.

대전광역시 서구청에서 공모한 마을공동체 사업에 장애인들과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사업에 공모하여 선정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장애인복지시설들이 힘을 합쳐 시민들에게 장애인식개선 활동과 함께 장애인들도 우리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어필하며 스스럼없는 관계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사업계획이 만들어졌고 최대한 시민과 장애인이 소통할 수 있는 사업방법으로 선정되었었다.

사업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마을에 쓰레기가 상습적으로 불법투기 되는 곳을 선정하여 정기적인 청소미화활동과 그 장소에 예쁜 꽃으로 만들어진 화단을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물론 이 활동에는 장애인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했다. 먼저 장애인들에게 왜 이 사업에 참여해야 하는지, 왜 이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들과 소통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했다. 그 과정은 말할 것도 없이 상당히 힘들었지만 사업에 참가하는 장애인들은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리고 그해 5월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을 돌아다니며 거리청소를 시작했다. 주민센터와 연계하여 불법쓰레기 투기장소의 쓰레기를 정리하며 8월에 설치될 화단의 사이즈와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8월에 실제 화단이 조성되었다. 우리가 봐도 아름다웠고 뿌듯했으며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 화단이 총 15곳에 설치되고 사업에 참여한 사회복지사들과 장애인들은 행복함의 미소를 지었다.

화단이 설치된 다음날이 되었고, 출근길에 화단이 설치된 장소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한동안 그 곳을 뚫어져라 응시해야만 했다. 분명 어제 저곳에 화단을 설치했는데 감쪽같이 사라진 화단의 행방이 궁금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곳을 설치된 화단을 찾아갔지만 역시나 화단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로 오인하고 처분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그날 마을을 청소하시는 환경미화원을 만나 물었다.

“혹시, 이곳에 설치된 화단을 치우셨나요?”
“화단? 제가 새벽부터 나와 있었는데 화단은 본적이 없는데요.”
“......”


아뿔싸.. 새벽부터 일을 나왔다는 환경미화원도 보지 못한 화단이라면 지난밤에 누군가 훔쳐갔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되었다. 구청에서 세금으로 지원받는 화단을 분실했으니 우리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져만 갔고 구청에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경찰서에 도난신고부터 하라는 말을 들었다. 구청과 통화를 끊고 112에 신고를 하려고 하는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이 폐품으로 오인해서 가지고 간 것이라면...”

따로 알아보니, 도난은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고 하며 벌금형 또는 구속이 된다고 한다. 나의 신고로 하루 파지를 주서 하루 3천 원 정도 수입이 생기는 할머니들에게는 벌금형이라도 상당한 액수에 해당할 거란 생각이 들었고 신고하기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구청 공모사업이기에 결과보고서를 작성할 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만 되는 순간이었다.

세금으로 지원받은 사업을 단 하루 만에 분실한 일이기에 일단 신고는 진행하였고 CCTV등을 통해 범인을 잡겠다는 경찰관의 말에 걱정이 앞섰다. 그때 이런 기도를 했었다.

“범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있는 어르신들이라면... 제발 잡히지 않게 해주세요.”

며칠이 지나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도저히 누군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서안이다. 진심을 다해 기도했고 그 기도가 통했던 모양이다. 다만, 필자가 우려한 어르신들이 아닌 일반주민이었다면 반드시 죄를 물어야했지만 다행히도 누군지 알 수 없는 도난사건으로 종료된 해프닝이었다.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면 참 나도 당시 순박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복지사로써 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겪지만 피의자를 걱정하는 처지까지 이른 것에 헛웃음을 짓는다. 당시 나의 온전한 순수함이 괜한 걱정을 만들었던 것 같다.
사회복지사는 그런 것 같다. 잘해도 걱정, 못해도 걱정. 지금은 파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라도 하나 사드리며 묻는다.

“많이 추우시죠? 길거리에 있는 거 아무거나 막 들고 가시면 안 됩니다.”

나의 말을 들은 어르신들은 커피를 받으시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신다.

“나 도둑아니야~”
“하하하!”
추천0

SNS 공유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SL사회지식연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