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훈의 소소한행복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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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연구소 18-11-03 10:26 조회 2,095회 댓글 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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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사회복지연구소 이민훈 칼럼리스트]
흔히 말하길 부부는 전생에 ‘인연(因緣)’이었다고 한다. 인연이 ‘악연(惡緣)’인지, ‘선연(善緣)’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필연(必然)’으로 만난 관계라는 것이다. 필연으로 만난 관계이기에 우리가 말하는 ‘촌수(寸數)’도 없는 특수한 관계성을 갖는다.
우리의 속담 중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심하게 다툰다 한들, 쉽게 이해하고 화합할 수 있는 말을 비유한 정겨운 말이다. 친구나 지인들과 다툼은 오랜 시간 여운을 남기며 누군가 먼저 양보하면 풀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부관계에서 양보라는 말은 적절치 않는 것 같다. 부부는 양보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모습을 보며 배워가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며칠 전, 집에 있는 아내에게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아내지만 나보다 생각의 깊이가 더 깊은 사람이다. 아내는 항상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이 조언은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 될 수도 있다. 때론 잔소리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그랬어?”
“항상 그렇게 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잖아?”
“그러면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는지 알아?”
높은 곳에서 낙하하는 물을 칼로 베기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자존심을 건드릴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건 원인제공자 입장에서 아내에게 듣는 조언이란 공통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제공하며 약자가 된다. 약자가 되면 대답을 할 수 없다. 대답을 못하니 무조건 잘못한 거다.
만날 똑같은 잘못에 똑같은 오류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구제불가능인가. 그건 또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고 싶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아내에게 구차한 변명을 구할 때 보통 이런 말을 한다.
“이 세상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사실 정말 세상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더라. 공적으로 부득이하게 특정행위를 해야 할 때가 있고 사적으로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걸 하나둘 모두 설명하기엔 남자의 뇌구조가 옳지 않게 발달되어 버린 인류학의 문제도 있다.
아내는 우리의 구차한 변명을 들으며 이렇게 대답을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게 아니라 대꾸를 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누가 하지 말라고 했어? 적당히 해야지!”
여기서 또 다른 변명이지만... 그 적당히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