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와 애국가

2019.09.04 연구소장
역사 0 409




그냥 궁금해서, 검색질

“안익태와 애국가”

안녕하십니까? ‘그냥 궁금해서, 검색질’을 제작하고 있는 SL사회복지연구소의 소소한행복입니다.
지금부터 노래 한 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떤 노래인지 잘 들어보시고 아는 노래라고 한다면 같이 불러보세요.

- 노래1(동영상 참조)

뭥미?

노래의 음과 가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래인데 무언가 이상하시다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시는 게 맞을 겁니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애국가’이니까요.

그런데!

가사는 애국가가 맞는데 음은 애국가가 아닌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곡이다?
이번에는 같은 가사에 다른 음으로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 노래2(동영상 참조)

이제야 애국가가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두 곡 모두 우리나라 애국가가 맞습니다. 불러진 시기와 상황이 다를 뿐이죠.

왜?!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이 작곡하고 작사가는 미상의 곡으로 널리 알려졌죠.
현재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와 예전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애국가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사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익태와 애국가라는 노래에 대해 조금 알아보고 싶어졌을 겁니다.
안익태와 애국가에 대해 그냥 궁금해서, 검색질을 해보겠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가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애국가는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담아 만든 국가입니다.
애국가는 국가사랑을 국민정서에 고착시키는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죠.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이 작곡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렇다면!

애국가를 알아보기 전 안익태 선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익태 선생은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나 1965년 9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첼로리스트였으며 최초의 지휘자로도 알려진 인물이죠.
1936년 역사적으로 애국가를 작곡하며 공연 등에서 이 곡을 지휘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안익태 선생은 숭실학교 재학시절, 친일교사를 싫어하는 등의 행동으로 정학을 당하지만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등 반일 운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때문에 일본경찰에 쫓김을 받던 중 일본 유학을 통해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하게 되죠.

하지만!

안익태 선생이 친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친일파라는 의혹도 받고 있는 상황이죠.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1940년 일본정부 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황기 2600년 기념봉축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이 곡은 일왕을 찬송하며 일본정부에 대해 칭송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 12월 도쿄 가부기좌(歌舞伎座)에서 초연되었던 적도 있죠.
이 외에도 증명되지 않은 다양한 이유로 악인태 선생은 친일이라는 의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애국가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안익태 선생이 만든 애국가 외에도 당시에는 여러 애국가들이 국민들의 입에서 불려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애국가가 대표적으로 불려지게 된 이유는 1940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를 국가로 채택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1910년 이전까지 불려지던 애국가의 가사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하세"
당시는 대한제국과 조선이라는 국명이 유명했음에 지금과 달리 ‘죠션’이라는 가사가 눈길을 끕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국가라는 단어를 듣거나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역사적으로 고통 받던 시기, 우리의 조상들은 애국가라는 노래를 부르며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요?
그때의 애국가와 현재의 애국가를 부르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애국정신이 깃든 우리나라, 민족의 노래라는 것이죠.
국가가 있어도 부르지 못하던 때가 있었지만 우리민족은 철저하게 애국가라는 노래를 지켜왔습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에게 어떤 어려움과 시련이 닥친다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노래로 길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s

  1.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