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해줘, 1988년!
"응답해줘? 1988년!"
우리는 흔히 ‘옛것’ 또는 ‘구시대’라는 표현으로 일명 ‘쌍팔년도’라는 말을 합니다.
쌍팔년도는 1988년을 말하며 이 시대를 현재의 문화와 이해관계에서 굉장한 구식으로만 표현을 하죠.
하지만
이런 쌍팔년도에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했으며 우리의 생활력이 변화하고 진보하는 계기가 많이 숨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1988년도의 기억에 남던 사건사고를 살펴보겠습니다.
응답하라!
그해 2월 달입니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으로 노태우 전대통령이 취임을 하였습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첫 시작이 노태우 전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대구에서 생활했습니다.
집안형편은 그리 좋지 못해 늦은 시간까지 담임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헌병학교에 입학을 했고 훗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군인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군복무를 하던 중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여 월남전에 맹호사단 재구대대(1연대 3대대)장으로 참전하였죠.
베트남 퀴논 전투에서 북베트남 군대를 전멸시킨 공로로 특별히 ‘을지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 6.29선언을 통해 군부정치가 아닌 민주정부에 정권을 이양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대통령 선거 직선제가 실행되어 오늘날 민주화의 꽃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노태우 전대통령의 임기는 오로지 민심이 아닌 1987년 내내 그는 전두환 정권에 충성을 맹세한 꼴이 되었죠.
때문에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군부 쿠테타 정권의 수혜자 정도로 보여 질 뿐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남극을 연구하는 연구기지인 남극 세종기지가 준공되었습니다.
남극 세종기지는 서남극 남극반도에 평행하게 발달한 ‘남쉐틀랜드 군도(South Shetland Islands)’의 킹조지섬에 위치해 있죠.
매년 약 17여명으로 구성된 월동연구대가 1년간 상주하며 약 100여명의 하계연구대가 파견되어 다양한 분야의 극지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극지연구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죠.
응답하라!
이제 3월 달로 가보겠습니다.
그해 3월은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삼성그룹에서 엄청난 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제2창업 선언을 통해 기업의 재도약과 성장을 공언합니다.
이때 유명한 이건희 회장의 발언이 있죠.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봐!”
당시 한국은 현대그룹의 주도하에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삼성에게는 현대를 앞서야 하는 구심점이 필요했죠.
제2창업 선언을 통해 삼성은 디자인부분부터 혁신적인 변화를 주기 시작합니다.
물론 AS서비스와 제품의 다기능요소를 첨가하기 시작하죠.
소비력이 없는 남성보다 여성 위주의 물품을 생산하다보니 출시하는 상품들은 대박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비로써 삼성은 한국의 제1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죠.
이와 함께 지금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던 패스트푸드 전문점 맥도널드가 한반도에 상륙하게 됩니다.
맥도널드 한국 1호점 서울압구정점이 개점을 하며 본격적인 햄버거 전쟁이 시작되었죠.
미국의 대표 프렌차이즈 체인 사업업체인 맥도널드는 ‘빅맥’이라는 햄버거를 판매하며 많은 나라에 체인업체를 두게 됩니다.
2013년 기준 맥도널드는 전세계 119개국에 체인점을 설립하며 3만 5000개라는 지점을 통해 매출을 통제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나라에 체인점을 두게 되어서 그럴까요?
경제학에서는 ‘빅맥지수(Big Mac index)’라는 통계를 통해 각국의 통화가치가 적정 수준인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 기업의 판매 매출이 한 국가의 화폐가치에 영향을 준다니, 정말 재미있는 사실이네요.
응답하라!
이번에는 5월입니다.
오늘날,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에 대규모의 위락공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과천에는 서울대공원이란 위락공간이 있었는데 무엇이 또 생겨났느냐고요?
그곳은 바로 ‘서울랜드’입니다.
88서울올림픽을 대비해 한일시멘트로 잘 알려진 한일그룹이 투자하여 설치한 한국적 디즈니랜드죠.
우와~
서울랜드는 세계의 광장, 삼천리동산, 모험의 나라, 미래의 나라, 환상의 나라라는 5개의 주제구역을 두고 있습니다.
구역마다 주제에 맞는 놀이기구와 오락시설을 즐길 수 있죠.
누구나 한 번은 놀러가 봤을 서울랜드는 동심의 추억이 담겨있는 놀이공간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너무나도 보편화되어 있는 컴퓨터 OS가 있죠.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 2.1버전이 출시되었습니다.
지금은 윈도우버전이 상당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어 편리와 보안이라는 모든 것을 갖춘 프로그램이 되었죠.
당시 윈도우는 영어버전으로 되어 있는 윈도우1.0버전과 2.0버전뿐이었으나 2.1버전부터 한글판으로 번역되었기에 상당한 관심을 받았죠.
윈도우2.0버전을 시작으로 오늘날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표준 프로그램이 된 게 아닌가 싶네요.
응답하라!
무척이나 더웠던 8월로 향해보겠습니다.
당시 초등학교를 다니던 제 기억에도 남아 있는 웃지 못 할 뉴스가 하나 있었죠.
일명 ‘내 귀에 도청장치’라는 사건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 뉴스죠.
???
1988년 8월 4일 21시 20분경, MBC 보도국 스튜디오에서 생방송 중이던 뉴스데스크에서 황당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한 남자가 생방송 중이던 스튜디오에 무단 침입을 시작으로 당시 前 제16대 무소속 국회의원 강성구 해설위원의 얼굴을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
“제 귀 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사건 당사자는 가리봉에 살고 있던 소창영씨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운동을 하다가 다친 자신의 한쪽 귀를 제대로 치료해 주지 않는 다는 불만을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응답하라!
이제 9월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한국의 1988년 9월은 정말 세계적으로 중요한 시기였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제24회 서울올림픽(88올림픽)’이 개최되었기 때문이죠.
서울올림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계획을 시작으로 내외신에 하계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내용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후보지로는 한국의 서울과 일본의 나고야가 경쟁을 하게 되었죠.
1981년 9월, 당시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 올림픽 위원회 총회에서 79명의 IOC 위원이 참여한 투표가 진행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지 않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서울보다 안정된 경제력과 로비가 앞섰던 나고야에 제24회 하계올림픽이 지정될 것이라 예상했죠.
하지만
결과는 서울 52표, 나고야 27표로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는 서울로 지정됩니다.
총 160개 국가가 참가하는 초유의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주제가는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이었으며 마스코트는 ‘호돌이’였습니다.
또한 한국 여자핸드볼은 올림픽 구기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는 감동도 전해주었죠.
평화의 축제 서울올림픽은 역대 어느 하계올림픽보다 훌륭히 치러졌다는 평가를 남기며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응답하라!
가을이 다가오는 10월로 향해보겠습니다.
당시 10월은 현재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95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한 남자는 상습절도죄로 17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도중 다른 교도소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탈옥!
그리고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주택에 침입하여 그곳에 살고 있던 민간인을 인질로 삼아 인질극을 벌이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지강헌. 지강헌 탈주사건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입니다.
지강헌은 인질극을 벌이던 도중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이 있으면 죄가 없으며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라는 뜻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오늘날 굉장히 자주 사용이 됩니다.
지강헌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로는 당시 범죄현장에 있던 공범들은 약600만원을 훔치거나 횡령하여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의 막내 동생 전경환씨가 600억 원을 횡령하고도 7년형을 받고 실제 2년만 수감하였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이죠.
당시 지강헌과 함께 인질극을 벌이던 4명의 다른 인질범들도 이에 앙심을 품었습니다.
아무튼
지강헌은 경찰특공대가 쏜 총에 저격당했고 경찰들이 쏜 두어발의 총상으로 병원에서 사망하기에 이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주득권층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지기 시작했죠.
응답하라!
벌써 11월을 살펴볼 시간입니다.
1988년 11월에는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고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 비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초선 국회의원인 한 남자가 청문회에서 차분하고 안정된 목소리로 질문을 합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그 외 핵심인물들은 자신들의 부정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성의 없는 자세로 청문회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오리발만 내밀던 그들을 당혹스럽게 하던 이 남자.
특히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장세동씨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죠.
또한 성의 없는 대답과 모습을 보이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자신의 명패를 집어 던지며 호통을 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전국에 방송이 되었고 청문회 스타가 탄생함을 알리게 됩니다.
이 초선 국회의원은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죠.
노무현 대통령은 이 청문회를 통해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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