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빼앗긴 남미 최빈국 볼리비아 그리고 칠레의 미소

2020.12.15 연구소장
역사 0 776




#검색질 #볼리비아 #칠레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고 메마른 고원지이며, 어떠한 생명도 살 수 없게 된 저주 받은 남미의 땅.
볼리비아의 유일한 태평양 진입로였던 이곳은 잘못된 정책 한번과 군사적 오판으로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너무나도 척박한 땅이었던 그곳에서 세계 구리의 30%가 생산되기 시작하며 그 땅을 빼앗은 나라는 굉장히 잘사는 국가가 되고야 마는데...

그런데!

(시그널)

1879년부터 1883년까지 벌어진 ‘태평양전쟁’은 오늘날까지 볼리비아에게 상당한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당시 볼리비아의 영토는 서쪽으로 태평양을 접하고 있었고, 오른쪽으로 산림부국인 브라질을 접하고 있었죠.
하지만 스페인으로부터 대다수 독립을 하며 신생국가들이 판을 치는 남미는 그야말로 중국판 춘추전국시대였다는 것입니다.

명확한 국경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중앙집권을 하는 완전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죠.
볼리비아와 칠레도 혼란스러운 시대를 경험하고 있던 터였으며, 양국간 합의에 의한 완만한 영토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문제의 원인이 되는 곳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볼리비아는 자신들의 영토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볼리비아의 유일한 바다 출입구 역할을 하던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칠레를 끌어들이게 되죠.
남미는 인구의 부족과 경제력 미비로 어떤 나라든 쉽게 자원을 개발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당시 볼리비아보다 조금 더 부유했던 칠레의 기업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며 안토파가스타 지역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1874년 볼리비아 정부가 칠레 기업들에게 25년간 무과세 혜택을 제안하며 칠레 정부와 조약하기에 이릅니다.
때문에 이 소식을 접한 칠레 기업들은 볼리비아의 안토파가스타 지역으로 몰려들게 되었죠.
무과세라는 특수한 혜택을 받는 칠레 기업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지역 개발에 참여하게 되면서 양국은 차이가 있으나 괜찮은 경제효과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원만한 관계로 발전하던 볼리비아와 칠레에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1876년 볼리비아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게 됩니다.
쿠데타와 함께 경제혼란이 발생하게 되자 볼리비아는 당장 돈이 필요하게 되었죠.

하지만 열악한 경제상황 속에서 볼리비아는 돈을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떤 방법으로든 국가재정이 필요하게 되었죠.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곳이 2년전 칠레와 조약을 맺엇던 그곳, 안토파가스타 지역의 무과세 혜택을 무시하고 칠레 기업들에게 거액의 세금을 먹이게 됩니다.
만일 이를 거부하면 기업들의 자산을 압류하는 등 악덕 정책을 펼치게 되죠.

볼리비아와 칠레는 무역마찰을 겪으며 양국은 서로 감정이 나빠지기에 이릅니다.
또한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철도를 연결하면서 안토파가스타 지역을 완전한 자신들의 영토로 확정하려 하자 칠레는 단단히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우리나라 옛말이 있습니다.
이 양국의 갈등을 지켜보던 또 다른 국가가 있었으니, 그 국가는 볼리비아와 혈맹국이라고 하는 페루가 등장하며 부채질을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볼리비아 페루, 칠레 모두 아주 친했던 국가였다는 사실이죠.
이들은 서로 1864년부터 1866년까지 스페인과 벌였던 ‘친차제도전쟁(Chincha Islands War)’ 당시 똘똘 뭉쳐 스페인과 싸우던 연합군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듯합니다.

그러나 칠레보다 조금 더 가까운 사이였던 페루는 볼리비아가 칠레에게 저지르는 악행에도 볼리비아 편만을 들기 시작합니다.
칠레는 단단히 화가 나기 시작했고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있는 자신들의 기업과 지역 개발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칠레는 결심을 해야했죠.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자신들의 군대를 파견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해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용맹무쌍한 바다의 군사 해군들이 전쟁을 벌이게 되는 것인데, 칠레는 황당하게도 바다에서 볼리비아의 국기를 단 전함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볼리비아의 경제력은 당시 남미에서 가장 못사는 국가였기에 별다른 해군력을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전은 페루의 몫이었죠.
칠레와 페루는 볼리비아를 대신하며 해상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하필이면 이 전투에서 칠레가 승리를 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볼리비아에게서 안토파가스타 지역과 페루에게서 ‘타크나(Tacna), 타라파카, 아리카’ 지역 등을 병합하며 영토지배권 및 경제권을 받게 되었고 볼리비아는 내륙국으로 몰락하기에 이릅니다.
전쟁을 도와준 페루도 더 이상 칠레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후 칠레는 선심을 쓰듯 타크나 지역을 페루에게 돌려주었고 라파카와 아리카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안토파가스타 지역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광산물이 묻혀있는 금싸라기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에도 볼리비아가 국제사회에서 칠레를 상대로 그 지역을 반환 요청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안토파가스타 지역은 초석과 구리가 대량으로 땅에 묻혀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과거 화약무기가 개발되면서 초석의 중요성이 크게 올라갔는데 문제는 자연산 초석은 중국, 인도, 칠레에서만 대량으로 채취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또한 구리는 오늘날 전세계의 약 30%가 안토파가스타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하며, 광산산업은 칠레의 주요 산업으로 전체 GDP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 구리가 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만일, 볼리비아가 1870년대 약속을 어기며 무과세를 과세로 전환하지 않았다면 현재 볼리비아는 세계최빈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잘못된 침략전쟁과 전쟁으로 흥하려는 그릇된 생각과 판단에서 벗어났다면, 오늘날 볼리비아는 과연 어떤 국가로 성장해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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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 칠레 / 페루 / 태평양전쟁 / 안토파가스타 / 남미 / 검색질 / 사회지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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