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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조선일보] [숨어 있는 세계사] 英 산업혁명 여파… 124년 전 뉴질랜드, 첫 최저임금 실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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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장 (112.♡.80.34) 21-03-17 15:19 조회 1,0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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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영국서 시작된 '인클로저 운동' 땅 잃은 농민들 도시로 떠나게 해 

- 생계 위협받는 저임금 근로자 늘자 각 나라 정부, 최저임금 도입했어요


[최저임금 제도]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지난해보다 16.4% 오르면서 역대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어요. 최저임금이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반드시 줘야 하는 최소한의 임금 수준을 말하는데, 정부가 근로자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예요. 사업주는 반드시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근로자에게 줘야 하고 어기면 처벌을 받도록 돼 있지요.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려서 근로자의 소득을 늘리고 결과적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반면 최저임금 제도로 인해 영세 자영업자들 부담이 커지고 근로자가 해고되거나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오히려 삶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요. 오늘은 세계 역사 속에서 최저임금 제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볼게요.

 

'인클로저 운동' 시작하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잘 알려진 나라예요. 산업혁명이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사회·경제적 대변화로, 통상적으로 농업 중심 사회에서 기계 공업 중심 사회로 옮아간 과정을 일컬어요. 이 때문에 근현대의 수많은 노동운동도 영국에서 시작됐지요.

 

이런 영국의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한 건 16세기부터 펼쳐진 '인클로저 운동(enclosure)'이었어요. 인클로저 운동이란 우리 말로 하면 '토지를 울타리로 둘러싸기' 정도인데, 중세 유럽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경작하던 토지(공유지)나 아직 사용하지 않고 있던 땅(미개간지)에 울타리를 쳐서 '여기가 내 땅이다'라는 걸 알린 운동이에요.

 

1차 인클로저 운동은 15세기 말~17세기 중반 있었는데, 영주가 양을 대규모로 방목하고 모()를 팔아 큰돈을 벌기 위해 농민들을 땅에서 내쫓으면서 시작됐죠. 2차 인클로저(18세기 초~19세기 중반) 때는 대지주가 빈 땅에 울타리를 칠 수 있도록 정부가 법으로 권장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대부분의 땅이 개인 소유가 됐어요.

 

반강제적으로 원래 살던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어요.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몸(노동력)밖에 없는 '저임금 근로자' 계층이 등장한 것이에요. 마침 도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특정한 영주에게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신분의 '근로자(노동자)'가 필요했어요. 이때 자본가(많은 돈을 가지고 근로자를 고용해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가 근로자에게 노동력의 대가로 지불한 것을 가리켜 '임금(wage)'이라고 해요. 과거 중세 봉건제도에서 땅을 중심으로 농민이 영주에게 내던 '지대(地代·땅의 사용료)'와 완전히 다른 개념이 탄생한 것이죠.

 

그런데 산업혁명이 계속될수록 근로자의 임금은 최소한의 일상생활마저 위협하는 낮은 수준에 머물렀어요. 19세기 중반 영국 신()구빈법(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법)을 시행하던 한 감독관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지요.

 

"근로자들이 극도로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음에도 그들이 받는 임금은 겨우 그들과 그 가족의 식비·주거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옷을 사 입기 위해선 그 이상의 수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등으로 이 계층은 티푸스(전염병의 일종)와 폐병에 걸릴 우려가 극히 높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임금을 올리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어요. 1849년 영국 남부 윌트셔에서는 주급(1주일에 받는 임금)7실링에서 8실링으로, 도싯셔에서는 9실링으로 인상됐지요. 그런데 임금이 애당초 너무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얼핏 엄청난 상승인 것처럼 보였어요. 도싯셔의 경우 주급이 한꺼번에 약 28%나 오른 셈이었기 때문이지요. 상당수 근로자가 굶주림을 겨우 면할 수준의 임금을 받았음에도 당시 런던에서 발행되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진지하게 "실질적인 향상을 이뤘다"고 전했어요.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최저임금제

 

당시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매우 길었어요. 큰돈을 들여 기계를 사들인 자본가들 입장에선 기계를 놀려 두면 손해였지요. 발빠르게 과학기술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 사들인 기계가 고물로 전락하기 전에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은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야 했어요. 그러려면 기계가 끊임없이 돌아가야 했고, 이 시기 근로자들은 하루 16시간 넘는 시간을 공장에서 보내야 했지요.

 

일례로 영국 맨체스터 부근의 한 공장 방적공(면공업 근로자)들은 물 마시러 가는 것조차 금지됐고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공장 안에 갇혀 하루 14시간씩 꼬박 일을 해야 했어요. 1890년대 이후에야 12시간 2교대제(낮에 일하는 근로자와 밤에 일하는 근로자를 나눠 교대하는 제도)가 실시됐는데, 당시 근로자들은 이런 변화를 '신의 은총'이라고 여기기까지 했어요.

 

이렇게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근로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설정한 임금이 바로 '최저임금'이랍니다. 최저임금이 제도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는데요. 1894년 세계 최초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법으로 정한 것이지요.

 

당시 뉴질랜드 해운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과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어요. 그러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산업조정 중재법'을 만들고 최저임금 제도를 실시한 거예요. 이어 영국이 지배하던 호주에서도 '공장 상점법'을 만들어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했어요. 1909년 영국에서는 봉제업을 포함한 네 가지 업종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시작했답니다.

 

이후 최저임금 제도는 빠르게 확산했어요. 1915년 프랑스 정부가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했고, 미국은 1938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중 하나로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했지요.

 

오늘날 최저임금 논란은 비정규직 문제나 하도급 업체 문제 등과 얽혀 더 복잡하고 다양해요.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당장 근로자의 삶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요. 그럼에도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면 아주 신중한 검토와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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